[책마을] 백성 버리고 떠난 선조… '작전상 후퇴'였다

입력 2018-05-10 17:25   수정 2018-05-11 05:42

조선전쟁실록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368쪽 / 1만3000원



[ 서화동 기자 ]
조선 선조가 일본군의 침략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전쟁 발발 5일째인 1592년 4월17일 아침. 첫 교전에서 배를 버리고 도주한 경상좌수사 박홍이 올린 장계를 받고서였다.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삼도순변사 신립 장군마저 패하고 충청도까지 일본군 수중에 떨어지자 선조의 몽진을 놓고 논란이 분분했다. 대신도 백성도 모두 반대했다.

선조는 “나라님이 우리를 버리고 가시면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사느냐”는 백성들의 외침에 귀를 막고 임진강을 건넜다. 일본군이 평양성을 접수하자 영변에 있던 선조는 압록강을 건너 요동으로 가겠다며 세자(광해군)에게 국새와 국사를 맡겼다. 다행히 그즈음 명나라 원군이 도착해 의주 근처에 주둔한다는 소식에 선조는 의주에서 전쟁을 지휘하기로 했다.

이 일로 선조는 두고두고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왕이 백성을 버리고 도주한 것은 비겁하고 비굴하다는 것이다.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등 베스트셀러 역사서의 작가로 유명한 실록사가 박영규 씨는 그러나 “선조의 피란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선조가 한성을 고수하며 결사항전을 택했다면 병자호란 때의 인조 꼴이 났을 거라는 얘기다. 패전해서 선조가 포로로 잡히면 순식간에 항복할 수밖에 없고, 더 큰 수치와 손실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조의 몽진은 ‘작전상 도주’라고 하는 게 적합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박씨의 신간 《조선전쟁실록》은 조선 건국기인 여말선초에 왜구 및 여진과 벌인 전쟁부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서양의 침략전쟁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이르는 조선의 모든 전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평가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각 전쟁에서 사용된 전술 및 전략, 장수 운용과 무기 체계 등을 상세하게 분석하면서 선조의 ‘작전상 도주’가 불가피했던 이유를 다각도로 설명한다.

조선은 200년 가까이 큰 전쟁을 치르지 않아 왕부터 신하, 백성에 이르기까지 안이했다. 일본군의 전쟁 능력을 과소평가했고, 병력 규모와 무기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일본군의 강점과 약점도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군은 조선 초기까지 괴롭혔던 왜구 수준이 아니었다. 최신식 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한 데다 100여 년간 지속된 전국시대를 통해 풍부한 전쟁 경험을 쌓은 노련하고 뛰어난 전투력을 갖춘 병력이었다. 그것도 무려 16만이 넘는 대군이었다.

저자는 “전쟁을 앞두고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상대에 따라 달라야 한다”며 무조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것도, 도망만 다니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나보다 훨씬 강한 상대가 머리를 숙이고 섬길 것을 요구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만 영토를 빼앗고 재물과 백성을 차지하려고 한다면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인조는 상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고 저자는 규정한다. 조선과 명나라가 일본과 두 차례 전쟁을 치르는 사이, 북방의 여진은 세력을 키웠다. 14년간의 전쟁을 통해 여진족을 통일한 누르하치는 후금(청)을 세우고 황제를 칭했다. 명과 후금의 싸움이 격해지면서 조선은 양쪽에서 압력을 받게 됐다. 광해군은 명의 원병 요청에 응하는 척하면서 후금에도 사절을 보내 평화협상을 시도했다. 조선이 군사력을 키울 때까지는 후금에 저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던 것.

하지만 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는 중립 노선을 포기하고 후금을 적대시했다. 결국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탓에 조선은 다시 전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저자는 “머리를 숙이고 조공하면 될 것을 명분만 앞세워 함부로 덤볐다가 무릎 꿇고 용서를 빌며 자신의 가족과 숱한 백성을 끌려가게 했다”고 평가했다.

책을 읽다 보면 역사는 전쟁과 평화의 연속임을 실감하게 된다. 고려말 혼란기부터 대마도 등을 근거지로 한 왜구는 골칫거리였다. 세 차례의 대마도 정벌에도 왜구는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 명은 조선에 왜구 토벌을 요구하면서 조선과 일본이 결탁해 명나라를 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왜구를 어느 정도 제압하고 나면 북쪽의 여진과 거란이 발호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고 나니 여진이 후금을 세우고 조선을 압박했다.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평화에 대한 전망과 기대가 무르익고 있지만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전쟁은 인간의 가장 잔혹하고도 비정한 표현 방식이자 인간문명과 지혜의 결정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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